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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녹차

역사 속 나주 녹차, 향차와 고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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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나주 녹차

전남 나주의 녹차 재배의 기록은 고려시대로 올라간다. 차를 재배하고 공납했던 다소(茶所)가 있었다. 조선시대 간행된 대부분의 지리지에도 차생산지로 기록되고 있다. 일제강점기까지 고형차(固形茶)가 생산됐다.

 

고려시대 향차(香茶)

조선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6권 전라도 남평현 항목에 '다소(茶所), 남쪽으로 처음은 30리, 끝은 60리이다.'라고 기록됐다. 고려시대 다소에서는 뇌원차(腦原茶), 대차(大茶), 향차(香茶)와 같은 공차(貢茶)를 생산했다. 고려시대 생산된 향차는 원나라에 예물로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나주에서 생산된 고형차(固形茶)

조선 후기 범해(梵海) 각안(覺岸)의 '차가(茶歌)'에 고형차에 대한 기록이 있다. 범해 각안의 차를 찬미하는 노래에는 덕룡산의 용단차(龍團茶)에 대한 시구가 있다. 1940년 간행된 '조선의 차와 선'에서도 고형차가 언급됐다. 덕룡산에는 불회사와 운흥사 등 차의 전통이 깊은 사찰이 있다.

 

달리 그림

정리

나주는 역사적으로 백제의 왕성한 해상교역과 관련이 깊다고 한다. 나주의 야생차밭은 영산강을 따라 덕룡산과 금성산을 중심으로 분포된다. 나주 지역의 차 군락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유전변이를 보유하고 있다 한다. 현지보존 추천 지역 39개소 가운데 9개소가 나주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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