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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의 꿈

나로기와 정수아의 운명적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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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기는 여장을 차리고 덕룡산을 향했다. 싫지 않을 정도의 바람을 가르면서 나아가는 로기의 머리에는 많은 상념이 오간다. 금성산에서 우연히 찾은 차밭. 그것이 인연이 돼서 만난 녹차 여인 목금성(穆金城). 그리고 금성 녹차의 비법을 익힌 과정. 의문의 그림 등등.

덕룡산 운흥사 입구에는 돌벅수가 눈을 부라리며 내려본다. 떫은 표정으로 산기슭을 돌아서는데 한떼의 염소를 몰고 내려오는 소녀가 있다.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카락은 정돈되어 있지 않고, 손에는 칡넝쿨을 휘감고 있는데 무서울 게 없다는 당돌한 표정이다. 그녀는 지나가는 로기 얼굴을 힐끗 보고 염소 떼를 따라간다. 로기는 수아 얼굴이 눈에 익다는 생각은 했지만 잠시였고, 이어지는 비자나무 숲에 마음을 빼앗겼다. 비자숲을 지나 절 입구로 접는데 옆 소로가 보인다. 길은 방금 소녀가 지나온 흔적이 있다. 호기심에 그 길로 접었다. 평소 다녔던 절로 가지 않고.

덕룡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신비한 기운을 받으며 한참을 걷노라니 뒤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좀 전 그 소녀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노려본다. 로기는 당황스러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하는데 그 소녀가 먼저 말을 건넨다.

'여길 왜 들어와?'

매우 불만스러운 말투로 칡넝쿨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말을 잇는다.

'여긴 내 구역이야. 남들이 오면 안 된다고.'

로기는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다.

'왜, 안돼?'

'내가 안된다면 안 되는 것이지, 무슨 말이 많아.'

시비조로 말하는 소녀 얼굴에 잠시 장난기가 번진다. 소녀는 채찍처럼 칡넝쿨을 돌리면서 로기 가까이 오더니만 여기는 자기 산이란다.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 없는 자기만의 산. 할머니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았노라는 이야기다.

로기는 그 소녀를 찬찬히 관찰했다. 정돈되지 앓은 머리카락이며 옷매무새지만 어딘지 모르게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이마에 적당한 콧날과 갸름하면서도 정돈된 눈매가 익숙했다. 말을 할 때 보이는 하얀 이는 햇빛에 반사되면 눈이 부실 정도. 그는 무릎을 쳤다.

목금성을 닮은 것이다.

'너 몇 살이니?'

'열일곱, 왜?'

'나보다 한 살 어리구나. 우리 친구 하면 어때?'

'그래.'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자기 이름은 정수아라고 했다. 할머니와 지내다 2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염소들과 함께 살며 산에서는 자신만의 아지트가 있다 했다. 성격이 거침이 없었다. 로기를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았다고도 했다. 그래서 바로 뒤따라왔다고 했다.

'나는 이 산이 좋아. 산에는 내 방이 있거든. 가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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