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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의 꿈

수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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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가 이끄는 대로 로기는 따라간다. 제멋대로 자란 아인줄 알았는데 말 품새가 제법이다. 조잘대는 가운데 커다란 봉분 앞까지 왔다. 왕대가 우거져 자세히 보지 않으면 고분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치된 봉분 옆에 칡덩굴로 가려진 입구가 있다. 수아가 얘기한 '방'이었다. 넌출을 들추고 들어선 무덤은 어두웠다. 사방이 큰 돌로 쌓아 만든 백제식 석곽무덤이다. 로기는 발이 떨어지지 않는데 수아 발걸음은 가볍다. 무덤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수아가 무덤의 남벽을 밀어내니 자동문처럼 벽이 열리고 밝은 빛이 들어온다.

세상에...

다른 세상이 열린 것이다. 로기가 봤던 목금성이 남긴 그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기하학적 무늬 같은 산들과 호수. 아담한 호수 주변을 감싸는 육송과 참나무 등이 잘 가꾼 정원처럼 전개되는데 곳곳에 자연 상태의 녹차나무가 있다. 자연스레 자란 녹차는 사람 키만큼 자란 것도 있고 이제 새순을 트고  있는 것도 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도 수아는 전혀 놀라지 않고 참새처럼 조잘된다. 이곳이 자신의 비밀 공간이라는 것과 할머니와 함께 이곳을 가꿔왔다는 사실을 냇물 흐르듯이 지껄이며 여기저기를 보여준다. 그녀의 무기는 해맑음이었다. 경계를 품을 여지를 주지 않고 지껄이는 이야기에 모든 무장은 해제된다. 로기는 무덤 초입에서 가졌던 긴장을 거둬내고 수아가 이끄는 대로 새로운 자연에 흠뻑 젖는다.

고운 띠를 두줄 두른 다람쥐를 따라 두 사람은 오솔길 산책에 나섰다. 로기는 덕룡산을 찾은 목적 따위는 안중에 없고 수아의 매력에 빠져든다. 염소 떼를 몰던 수아는 이젠 없다. 아리따운 선녀가 하강한듯한 수아는 어느 틈엔가 맨발로 걷고 있었다. 그녀의 옷매무새도 머리 모습도 달라졌다. 로기는 자신의 볼을 꼬집어 봤다.

꿈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로기는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망각하고 수아와 함께 기하학적 모습의 산으로 가고 있었다. 그림 속 신선이 눈길을 보낸 그곳을 향해. 워낙 자주 봤던 그림이라 현실 속에서 마냥 다녔던 길처럼 훤했다. 올라가는 길에 수아는 가끔 휘파람을 불었다. 여기저기 산새들과 동물들이 답한다. 제법 가까이서 대답하는 괴고마리 하나는 늘  수아 주변을 맴돌면서 로기에게 눈치 한다.

'뭐야, 질투하는 거야.'

'네가 여기를 왜 와.'

아니 대화가 된다. 그냥 내뱉은 말인데 대답을 하는 것이다. 뭐냐? 이 상황이. 로기는 수아에게 물으려는데, 수아가 먼저 말을 꺼낸다. 여기 사는 모든 생명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단다. 그 말에 옆에 있는 참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몇 살이니?'

'나 나이가 궁금해?'

아니 나무도 말을 하네. 로기가 놀라워해도 수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냥 앞을 향해 간다. 로기는 모든 것이 신기해서 발걸음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림 속 목표 지점으로 짐작되는 곳에  도착했을 때 나타난 광경은 바로 금색 자태의 큰 녹차나무였다. 수아는 목금성의 비밀키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수아는 어떤 인물일까?

달리가 그린 '덕룡산의 수아'